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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27명의 임금중 고종과 순종을 제외한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간 25대의 임금들의 실록을 말하며, 실록의 보호과 관리를 위하여 전국 여러곳에 사고를 세우고 보관하였다.


고종과 순종의 실록은 1927부터 1932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주도로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기록들이 많아 제외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가기록원, 조선왕조실록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오대산본 실록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동경제국대학으로 무단 반출되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상당수 소실되었으나, 2006년 대대적인 환수운동을 통해 잔존한 74책을 돌려받고 2017년 일본에서 경매를 통해 1책(효종실록 1책)이 추가되어 75책이 되었다.

 

75책(환수 74책 + 경매 1책)

27책(중종실록 20책, 선조실록 7책) + 47책(성종실록 9책, 중종실록 30책, 선조실록 8책) + 1책( 효종실록 1책)

 

현재 평창군 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서 실록 일부가 전시 중이고 나머지는 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훈민정음과 함께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국역사업을 통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오대산 사고

월정사에서 상원사 가는 길 중간에 샛길로 들어서면 돌이 깔린 외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대산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울퉁불퉁 돌길의 외길이라 운전에 조심하며 올라가야 한다.

 

일제 강점기 오대산 사고

오대산 사고는 선조 39년(1606년)에 월정사를 수호사찰로 지정하고 사각(앞쪽)과 선원보각(뒤쪽) 2개의 건물로 처음 지어졌으나, 한국전쟁 때 전소되어 1992년 복원되었다.

 

오대산 사고는 2층 구조로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기 위하여 건물은 약간 올려 지었고, 팔작지붕으로 권위를 살리면서 길게 늘어뜨린 처마는 눈과 비로부터 건물을 보고하고 있으며, 사고를 둘러싸고 있는 2중의 돌담은 산불로부터 사고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창문은 벽면 위쪽으로 배치하고 나무로 된 판창으로 덧대어 햇빛과 눈과 비로부터 실록을 보호하고 있다.


2개의 출입문중 동문은 일반인들의 출입에 사용되었고, 정문 격인 남문은 의식을 행할 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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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선원보각에서는 조선왕실의 족보를 보관했으며, 오대산사고에 보관되었던 실록에는 붉은 글씨와 검은 글씨로 수정과 삭제의 교정부호가 남아있는 교정본이 포함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를 더하고 있으며 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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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의 보관

실록을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지상에서 띄우고 통풍을 위한 창문을 달아 환기시켰다.

 

 

실록은 오동나무, 버드나무, 피나무, 소나무 등을 사용하여 만든 궤짝에 보관하였다.


실록은 서로 달라붙지 않게 책과 책사이에 종이를 끼우고 기름종이로 책위를 덮어 붉은 보자기로 싸고, 해충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천궁, 청포 같은 약재를 넣어 궤짝에 넣고 열쇠를 채워 함부로 열 수 없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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